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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결혼현황

국제결혼의 어제 오늘 그리고 내일을 봄으로서 국제결혼이 생경한 문화의 산물이 아니고 인류의 자연스러운 하나의 결혼형태였음을 다시 한번 인식함으로서 현재 왜곡되어 있는 결혼의 가치를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특히 우리나라의 역사서에 기록되있는 최초의 국제결혼에 대한 기록을 둘러보고 근대이후 대표적 국제결혼의 사례를 확인해 봄으로서 역사적인 당위성을 확보하는 것이 현재를 인식하는데 중요한 출발점이 될 듯합니다.

역사서에서 기록되어 있는 최초의 국제결혼은 무엇일까요?

여러형태의 견해나 이견이 있을 수 있지만 최조의 국제결혼이라 말할 수 있는 2가지 사례를 소개합니다.

아유타국(지금의 인도)에서
시집 온 허왕옥공주이야기

사례하나. 가락국의 시조가 된 수로왕은 서기 48년에 인토 이유타국의 공주를 왕비로 맞이하였다고 [가락국기]가 적고 있다. 인도 아유타국 공주와 결혼은 이 나라의 최초의 국제결혼으로 감탄하지 않을 수 없으며, 배와 말을 부리는 뛰어난 기술에 당시의 국력을 느끼게 된다. 특히 인도의 신하들에게 쌀과 배를 선물했음은 가락국이 그 당시에 쌀과 베(옷감)를 생산했음을 말해주고 있다. 이 나라 최초의 국제결혼을 했고, 쌀과 베(옷감)을 생산한 조상의 지혜는 우리 고장만의 아름다운 문화일 것이다.

허황후가 처음 배를 닿은 곳으로 아름다운 이야기가 서린 망상도, 별포 등은 진해시 용원동에서 만날 수 있다.

국제결혼은 태고이래로 아주 자연스러운 결혼의 형태입니다.

언제부터인가 국제결혼이라는 말이 갖는 느낌이나 받아들이는 일반적인 인식이 많은 문제점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인종적인 편견이나 그릇된 민족주의 및 국수주의가 인식에 왜곡을 가져오지않았나 하는 생각입니다.
아이러니 하게도 현재 남북한의 남녀가 만나서 결혼을 한다 해도 법률적인 인식의 국제결혼 입니다. “국제결혼”은 사람의 인종적인 차이나 경제적인 차이 문화적 차이를 대별하는 말이 아닌 단순히 국적이라는 것을 기준으로 명명된 이야기입니다.

인간의 존엄성과 결혼이라는 것이 본질을 생각할 때 단지 절차상의 번거로운 문제일 뿐 국제결혼은 결코 대별되는 사항이 아닙니다. 그럼에도 왜곡된 인식이 사회적인 갈등과 결혼의 순수성을 해치고 있는 현실에 대한 우리의 성찰이 필요합니다.

이승만대통령과
프란체스카여사 이야기

사례둘. 근대에 와서 누구나 아는 국제결혼 사례가 있습니다.
이승만대통령과 프란체스카여사 이야기

대한민국의 초대 대통령 이승만 대통령도 국제결혼을 했고 우리의 초대 영부인이 오스트리아 출신의 파란 눈의 연인이었다는 사실이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는 오늘입니다.

사회적 현상속에서의 국제결혼에 대한고찰
오늘날의 국제결혼을 이해하는데 있어서 간과해선 안될 것은 우리의 격동의 근대사 속에서 국제결혼의 변천사를 인식해야 할 것입니다.

사회적 현상속에서의 국제결혼에 대한고찰

오늘날의 국제결혼을 이해하는데 있어서 간과해선 안될 것은 우리의 격동의 근대사 속에서 국제결혼의 변천사를 인식해야 할 것입니다.

태동기

일반인들 사이에 국제결혼이라는 형태가 사회적 이슈나 문제의식으로 자리잡기 시작한 시점을 말합니다. 한국전쟁이 끝나고 경제적으로 어려웠던 시절 우리나라 국민들 사이에 불처럼 일어났던 사회현상이 있습니다. 이러한 결혼은 이후에 많은 사회적 문제와 내적 갈등의 요소로 가지고 되었고 가난한 나라의 국민으로서의 아픔과 상처를 담고 있는 역사적 사실입니다. 이렇게 시작된 국제결혼은 미국, 일본 독일등 선진국 남성과 결혼으로 1970년대 밑까지 계속되다가 우리결제의 반전 및 사회적 인식의 변화등에 맞물려 1980년대를 깃점으로 점차 사라지게 됩니다.

전환기

1990년대에 들어서면서 우리나라 남성과 외국여성과의 결혼이 점차 국제 결혼의 주류로 전환됨을 의미합니다. 이러한 현상의 중심에도 사회적 문제가 자리하고 있는데 바로농촌총각의 결혼문제가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면서 그 돌파구로 조선족 여성과의 결혼이 추진되면서 국제결혼의 새로운 전기를 맞이합니다.

1998년 IMF는 국내사회전반에 새로운 패러다임을 형성하게 되는데 국제셜혼도 농촌총각과 조선족 여인의 결혼에서 도시근로자, 고학력자, 전문직으로 보편화되고 대상여성도 중국에서 아시아 각국의 거의 모든 나라여인은 물론 러시아까지 확대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수요의 팽창에 비해 과거 고착되었던 국제결혼의 인식은 결혼의 본질에서 벗어나 국제결혼에 대한 가치를 저하시키는 문제로 대두되게 됩니다. 현재국제결혼은 하나의 당연한 문화 코드로 자리매김 했음에도 인식의 왜곡 제도적 미비등으로 인하여 갈등과 사회문제를 안고 있는 상태입니다. 수요, 인식, 제도 등 모든면에서 보편적 가치가 인정되는 성숙기로의 진입을 눈앞에 두고 있는 게 오늘의 현실이라는 판단 앞에 우리 모두의 노력이 또한 필요한 시기입니다. 전체혼인율에 대비 국제결혼 혼인비율 이상의 통계에 나타나는 분명한 것은 국제결혼이 점차
증가하고 있는 사실이고 이러한 경향은 앞으로도 계속
되어질 전망입니다.

결혼대란

2010년에는 여자 100명단 120명으로 인구 구성비의 불균형이 심화될 전망입니다. 2012년에는 여자 100 남자 124로 심화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불균형이 영원히 지속 될 문제는 아니겠지만 최소한 당분간은 우리사회의 문제로 대두되는 상황입니다. 또한 국내 이혼건수의 급증은 또다른 국제결혼의 증가 원인으로 자리하고 있습니다. 1995년 68,000여건, 2001년 135,000건, 2003년에는 176,000건으로 급속하게 늘어나고 재혼건수의 상당부분이 국제결혼을 통해 이루어지고 있는 현실은 앞으로 우리나라의 국제결혼수요에 대한 필연성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2006~2014년 외국인아내와 외국인남편 혼인건수 국가별 국제결혼 건수